원래는 8번 '죽음'으로 생각하고 썼는데 쓰고보니 이미 썼던 주제더라구요
다른게 뭐가 있나 찾다보니 75번이 당첨(?)
누군가의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있다는건 참혹한 일이예요.
자신의 무능함을 처절하게 뼈져리게 느끼게 되니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건 너무 슬픈 일이예요...
걱정마세요..전 자살같은건 안해요...(퍽)
"미스터 민츠, 당신과 저와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요? 당신은 얀 장군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그 분의 죽음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겐 폐하의 승하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그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당신들의 슬픔은 출발 지점에서 시작되었는데, 우리들은 마지막 지점에 이르러 출발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습니다. 살아남아 그것을 겪는 우리는......"
율리안은 뮬러 앞에서 더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니 말을 하지 않아도 둘은 서로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말도 오가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공간의 공기는 어색함이 아니라 동질감이었다. 뮬러의 부관이 그의 상관을 찾아 방에 들어와서야 방의 공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미스터 민츠"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조금 전의 공기와는 다른 어색한 인사가 오간 후 두 사람은 현재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들로 돌아갔다.
황제의 국장이 끝나고 몇 주가 지났다. 충격에 빠진 제국은 점차 황태후의 통치 아래 안정을 되찾아갔다. 율리안도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하이네센으로 돌아갔고 황제의 유언대로 황태후의 이름으로 뮬러 상급대장 대신 뮬러 원수라는 새로운 직함을 받게 되었다.
뮬러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서류들을 든 채 예전에 했던 민츠와의 대화를 곱씹고 있으며 괴로운듯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든 그렇지않든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간다. 난 그것이 두렵다. 몇 달을..아니 몇 년을 슬픔에 빠져 살지도 모르지. 하지만 점점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일상생활을 하겠지. 그것을 폐하나 먼저 간 이들이 용서해줄까?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은 이들이 그들을 잊고 사는 우리를 용서해 줄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도 소중했던 이들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자신을 용서 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죽은 자들이 그들을 잊고 사는 우리를 용서해준다는건 살아남은 자들이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생각일뿐이다. 하지만 평생 이 고통을 가지고 살아야한다는 것인가...'
뮬러는 책상 앞의 서류들을 정리 한 다음 책상 앞에서 마치 조각이라도 된 듯 몇시간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땐 석양이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뮬러는 황금색과 붉은색이 아름답게 조화되어 있는 풍경을 그의 가슴 가득 담았다. 책상 앞에 정자세로 앉은 그는 지금까지 잠궈놓았던 첫번째 서랍을 열었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 온갖 말을 가져다 붙여봐도 역시 나는 나 자신을 용서 할 수 없다. 현재로선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겠군. 이 아름다운 풍경을 폐하께 사죄의 선물로 가져가도록 하자. 폐하께서 이런 나를 용서해주실까......."